
커리어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 시작에는 뜻밖의 우연이 자주 등장한다. 우연히 잡은 면접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서, 우연히 본 공고에서. 그런데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말한다. 나는 운이 좋았다. 그저 운이 좋았다고만 말하는 순간 우연은 설명이 아니라 사치품이 되어 버린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존 크롬볼츠 교수는 이 우연을 다른 눈으로 보았다. 그는 진로상담 이론의 대가였다. 그리고 1999년 캐슬린 미첼, 앨 레빈과 함께 계획된 우연(Planned Happenstance) 이론을 제시했다. 이들의 주장은 도발적으로 들린다. 진로는 계획과 결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뜻밖의 우연을 기회로 전환하는 태도와 행동이 진로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우연은 누구의 삶에나 찾아올 수 있다. 그렇다면 우연을 기회로 만드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이들은 다섯 가지 기술을 제안했다. 호기심, 지속성, 유연성, 낙관성, 위험 감수.
호기심은 새로운 배움의 기회를 탐색하는 기술이다. 호기심의 실체는 멋진 성격이 아니다. 그것은 행동이다. 모르는 것 앞에서 묻는 행동, 초대를 받아들이는 행동,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 보는 행동.
내 인생의 큰 우연 하나를 꺼내 본다. 어느 지역 동물병원에서 밤 근무를 시작한 일이다. 그 출발점은 다니던 병원에서 원치 않게 퇴사한 경험이었다. 그 부당한 일을 겪지 않았다면 나는 밤 근무를 선택지에 올려 두지 않았을 것이고, 아마 지금처럼 작가나 강연가가 되지도 않았으리라. 계획된 우연의 '계획'이 바로 이것이다. 결과를 정하지는 말되 움직임은 계속하라는 것이다.
크롬볼츠의 이론은 그래서 하나의 계획에 자신을 가두지 말라고 권한다. 진로 계획을 오 년 단위로 세워 그대로만 따르려다 보면 우연을 소음으로 취급하기 쉽다. 계획 밖의 제안은 수신 거부다. 하나의 문만 바라보면 그 문이 열리지 않을 때 막막해진다. 반면 우연을 일구는 사람은 창문을 여러 개 열어 둔다. 어느 창으로 바람이 들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이론을 방향 없는 떠돌이의 철학으로 읽으면 안 된다. 계획된 우연을 나는 두 가지 움직임으로 읽는다. 하나는 기회를 넓히기 위해 먼저 움직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연이 왔을 때 그것을 알아보고 붙잡는 것이다. 붙잡는다는 것도 사실 행동이다. 남의 제안에 "한번 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나는 학생들에게 우연 노트를 권한다. 하루에 하나, 기대 이상으로 굴러 들어온 일을 적는 것이다. 어느 카페에서 건넨 이야기, 우연히 읽은 글, 길에서 마주친 선배의 근황. 적다 보면 그들의 다음 행동이 이상해진다. 그 이상해진 행동들이 모여 몇 달 뒤 새로운 선택을 만든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그 말은 절망의 문장이 아니라 자유의 문장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는 완벽한 지도를 만들 필요가 없다. 대신 나침반과 창문이 필요하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사람들의 비밀을 재능이나 행운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들은 창을 더 많이 열고, 더 자주 밖을 내다보고, 문 앞에 서면 말을 건다. 그 습관이 쌓여 우리가 보는 '운 좋은 사람들'의 모습을 만든다.
오늘 하루, 계획 밖의 초대 하나를 받아들여 보라. 그 우연이 스무 년 뒤의 당신을 만들고 있을지 모른다.
[박근필]
그로쓰 퍼실리테이터
읽고 쓰고 말하는 삶으로 당신의 성장을 돕습니다
박근필성장연구소장, 수의사, 작가, 칼럼니스트,
강연가, 커리어 스토리텔러
저서 : <할퀴고 물려도 나는 수의사니까>
<나는 매일 두 번 출근합니다>
<마흔 더 늦기 전에 생각의 틀을 리셋하라>
<방구석에서 혼자 읽는 직업 토크쇼>(공저)
<당신의 원고는 왜 계약되지 않는가>
독저팅, 필레터 운영
부산시청 공무원 200여 명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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