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보내는 영혼의 편지]] 연산군

누군가 그대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한다면 조심하십시오

 

[그대에게 보내는 영혼의 편지] 연산군

 

안녕하세요. 마음의 쉼이 필요한 그대에게 빛처럼 살다 간 영혼들의 편지를 전하는 영혼지기 ‘자인’입니다. 지금, 이 순간, 그대의 마음이 잠시 비어 있다면 그 틈으로 영혼의 편지를 함께 열어보려 합니다. 

 

오늘은 조선의 제10대 국왕이며 폭군의 대명사인 연산군이 보내온 편지 속으로 조용히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대에게.

사람들은 나를 폭군이라 부릅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나는 많은 사람을 죽였고, 신하들을 짓밟았으며, 내게 바른말을 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았습니다. 연회를 벌이고 사냥을 즐겼으며, 궁궐을 내 욕망을 채우는 곳으로 만들었습니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왕이었던 사람입니다. 아버지는 성종이었고, 어머니는 폐비 윤씨였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오래 기억하지 못합니다. 내가 세 살 되던 해, 어머니는 폐비가 되어 궁궐에서 쫓겨났고, 1482년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는 그때 너무 어렸습니다. 어머니가 왜 궁궐에서 사라졌는지도, 왜 다시 돌아오지 않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왕이 된 뒤에야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내 마음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그대는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어린 시절 잃어버린 어머니는 왕이 된 뒤에도 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왕이 되고 나서야 그 빈자리가 더 크게 보였습니다.

 

그대여. 사람은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를 잊었다고 생각하지만, 상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것은 다른 얼굴로 다시 올라옵니다. 내게는 분노였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에 관여했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향한 분노였습니다. 1504년, 나는 갑자사화를 일으켰습니다. 폐비 윤씨의 죽음과 관련된 신하들을 대거 처벌했고, 이미 죽은 사람들의 무덤까지 파헤쳐 시신을 훼손했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원한을 갚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복수는 이상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내가 복수를 하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복수가 나를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어머니를 위해 칼을 들었지만 결국 그 칼은 수많은 사람의 목을 향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왜 분노하는지도 모른 채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마음이 무서운 이유입니다. 상처가 너무 오래되면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왕에게 바른말을 해야 할 신하들이 두려움 때문에 침묵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것을 나에 대한 충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침묵은 충성이 아닙니다. 때로 침묵은 한 사람을 망하게 만드는 가장 조용한 방법입니다. 내 주변에서 내 욕망을 부추기고, 내가 듣고 싶은 말만 해주었던 사람들도 나를 잘못된 길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도 그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니 모든 책임을 남에게 돌릴 수는 없습니다. 나는 왕이었고, 내가 한 일의 책임도 결국 내 것이었습니다.

 

그대여. 누군가 그대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한다면 조심하십시오. 나를 망친 것은 나를 미워한 사람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상처받은 사람은 조심해야 합니다. 자신의 상처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나처럼 말입니다. 나는 상처받은 사람이었지만 그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상처를 칼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그 칼은 결국 나 자신에게도 돌아왔습니다.

 

그러니 혹시 그대의 마음속에 오래된 상처가 있다면 혼자 키우지 마십시오. 용서할 수 없다면 당장 용서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그 상처가 그대의 남은 인생까지 지배하게 만들지는 마십시오. 사람이 자기 마음의 왕이 되지 못하면, 세상의 왕이 되어도 결국 자신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부디 그대의 상처가 그대의 칼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조선의 왕좌에서 내려와 역사의 나그네가 된 나, 연산군이 그대에게 이 편지를 띄웁니다.

 

 

작성 2026.09.07 09:08 수정 2026.09.0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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